자연염색과 우리옷
(2006.4)
 

실제로 서공임 화백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소녀다운 모습에 기자를 당황케 했다. 25년간의 인사동 생활을 정리하고 효자동으로 옮긴 그의 작업실은 처음 찾은 사람도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묘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한옥을 개조한 서공임표 작업실은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태양열발전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바닥은 나무를 활용해 마루느낌을 연출했다. 꽃샘추의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 커피향이 솔솔 풍기는 아늑한 공간에서 따듯한 봄볕을 온몸으로 맞으며 참 오랜만에 편안한 대화를 나눴다.

먼저,2006 유니세프카드 디자인으로 이한우 화백 작품과 함께 선정된 것을 축하한다.

- 여태껏 살면서 좋은 일이라고는 처음 해보는 것이다. 유니세프 측에서 연락이 와서 자료를 보냈더니 심사를 거쳐 내작품 한 점이 선정됐다더라.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일이니 만큼 굉장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 민화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서 뿌듯하다.

올 연초에 열었던 '길상화 초대전'까지 4번째 띠그림 개인전을 치렀다.

- 이번 전시회에서는 12지 가운데 11번째 동물인 개를 그린 민화 20여점을 포함해 용.호랑이.닭.해태 그림 등 운수가 좋길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길상화 40여점이 전시되었다. 1998년 호랑이해를 맞아 '민화 호랑이전'을 연 이후로 2000년 용, 2005년 닭, 2006년 개 등 12가지 띠 동물 가운데 재앙을 막는다는 동물 4가지를 모두 화폭에 담았다.

상상의 동물인 용을 그리기 위해 전국의 사찰.고궁.고서점을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았고, 호랑이전을 준비하면서 무려 100마리의 호랑이를 그렸다.

아직까지 민화는 미개지(未開地)라고 생각한다. 그런 만큼 처음 시작했을 당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 어렸을 때부터 화가가 꿈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화방을 지나가다 민화에 발을 들이게 됐다. 한 화방에서 7년 동안 설거지와 청소 등 궂은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민화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익혔다. 또 시간 날 때마다 골동품 가게와 헌책방을 다녔고, 일주일마다 바뀌는 전시회를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다. 인사동에서 도제교육을 받은게 내게는 행운이었다. 그리고 붓 몇 자루와 천 몇 필을 가지고 무작정 인사동에서 작은 작업실을 열었다.

나이도 어렸고 경험도 없이 도제교육 7년 만에 작업실을 낸 것을 위험한 용기가 아니었나 싶다.

- 나이도 어리고 몸집도 작은 게 민화를 그린답시고 하루종일 작업실에 붙어 있어서 좀 이상했을 것 같기도 하다(웃음). 그래도 열심히 하니까 사람들이 조금씩 알아주더라. 대부분의 예술 하는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춥고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더군다나 학연.지연.혈연 없이 우리나라에서 예술가로서 명성을 얻기란 무척이나 힘이 든다. 연줄이 없는 만큼 노력을 많이 했고 또 열심히 했다. 그림을 많이 그려 손에 피가 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기회가 왔을 때 완전하게 내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11번의 개인전과 초대전, 그리고 수많은 단체전 등 이력을 보고 있자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작업량이 엄청날 것 같은데..

- 아는 사람들 사이에 '괴물'로 통한다. 정말 연중무휴 그림을 그린다. 여행도하고 놀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것을 즐길 줄 모른다. 욕심이 많아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작업을 많이 하자는 '다작주의'이다. 다작을 했을 때 그 중에서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처럼 머릿속으로 아무리 멋진 구상을 한다고 해도 그림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작년 11월에 열렸던 2005 서울 카페쇼에서 커피를 재료로 한 작품을 선보여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 평소 친분이 있던 커피 컨설턴트의 제안으로 장은경 작가와 커피를 재료로 한 작업을 같이 하게 됐다. 커피를 재료로한지 또는 캔버스 천에 민화를 그리는 작업이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었다. 사실 커피를 작업하는데 처음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민화는 한지를 쓰는데, 요즘은 한지가 표백되어 나오기 때문에 옛것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누렇게 만든다. 담배를 이용해 물들이기도 하는데, 주로 치자와 커피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커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카페쇼가 처음이었다.

평소에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는 것같다.

- 내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전통을 기본으로 한 현대적인 민화이다. 그래서 소재나 기법의 변화를 주는데, 입체적인 효과를 위해 요철지를 사용하기도 하고 부조도 시도하고 있다. 재료는 무한하고, 요즘은 전통만 고집한다고 해서 전통시장을 지키기 어렵다.

배우자와 자녀가 없다는 것. 자유로운 만큼 외로울 것 같기도 하다.

- 이번에 사진이 잘 나와야 중매가 좀 들어올 텐데..(웃음). 혼자서 그림 그리는 시간은 정말 무아지경이다. 한창 그림을 그릴 때는 하루걸러 하루 밤샘할 정도였다. 솔직히 외롭다는 생각은 별로 안한다. 집에서는 작품에 영감을 주는 엄마가 계시고, 한 달에 두서너 번 작업실에 친구들과 와인파티를 열어 작품에 대한 이야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민화인생 28년, 특별한 추억도 많을 것 같다.

- 1996년에는 에스파냐의 카를로스 국왕 부부가 내 그림에 관심을 갖고 인사동에 있는 작업실을 찾아주기도 했다. 또 작년에 권양숙 여사가 러시아 순방 갈 때 입었던 한복에 무궁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민화는 한복에 있을 때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내 그림에 애정을 가져주는 한분 한분이 모두 고마울 따름이다.

아직도 민화가 나아갸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

- 민화는 상징적이면서도 실용적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화를 그리는 사람의 정성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의 가치는 정성이 얼마나 들어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또 민화를 의상과 소품(장신구,컵) 등에 활용할 수 있어야한다. 후배들을 양성하는 부분도 걸림돌이 많다. 전통문화 활성화를 위해서 많은 후배들을 키우고 싶지만 워낙 고된 작업이다 보니 견디지 못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것을 아껴줄 수 있어야 우리 것이 세계화 될 수 있다.

올해는 어떤 계획들을 세워놨나?

- 올해는 특별한 계획 없이 강의 나가면서 재 충전의 기회로 삼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