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포럼
(2005.12)
丙戌年 吉祥畵 초대전 - 서공임
 



개(戌)가 맡은 방위는 서북서이며 음력 9월에 해당하고, 시간으로는 오후 7시에서 9시를 담당하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으로 되어 있다. 십이지라는 개념은 중동지역에서 중국의 은대에 전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북방민족의 방위신 개념인 사신(四神:청룡, 백호, 주작, 현무)에 이어 신라의 12지상으로 발전되어 완성된 것이 지금 우리가 무심히 쓰고 있는 12지다. 그 유래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우리화되면서 고유한 문화로 토착화되었다. 즉 우리나라의 왕릉과 귀족의 능묘에서 각 방위별로 동물상을 조각 장식한 것은 독보적인 것으로 시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자적인 양식과 형식을 전개해 왔다고 보는 것이다.


12동물의 상징성을 통해 우리는 자연적,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 대처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우리들의 지혜와 경험이 어우러져 일반 백성들의 종합적인 사고형태를 이뤘으며 생활 철학의 관념체계를 형성해온 것이 전통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이같은 십이지 띠 문화가 결국은 개인의 운명, 심성을 파악하는 잣대가 되었고, 더러는 개인과 개인 상호간의 융화관계 또는 상충관계를 밝혀보려는 탐구의 도구로 쓰이는 방법론으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관점에서 개는 그 성질이 온순하고 영리하여 사람의 뜻을 잘 따르고, 특별히 발달한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며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경계심을 발휘하여 자기의 세력범위 안에서는 대단한 용맹성을 보인다. 특히 주인에게는 충성심을 보이며, 낯선 사람에게는 적대심과 경계심이 강하다. 이 같은 특징을 선용하여 개는 집지킴은 물론 사냥, 안내, 수호신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잡귀와 병도깨비,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는 벽사의 능력과 미리 재난을 경고하여 예방을 해준다고 믿어 왔다. 이런 개에 대한 믿음이 민화에서는 귀여운 애완동물로서의 견공의 모습이 아니라 그 얼굴이 무섭기까지 한 네눈박이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모습은 전형적인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종개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목에는 귀신을 쫓는 방울을 달고 있다. 개는 캄캄한 밤중에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최악의 환경에서도 멀리서 슬금슬금 오는 도둑이나 귀신의 발자욱 소리까지도 듣고 보아야하기 때문에 두 눈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 눈을 4개로, 귀도 4개로 보충해주는 그림을 등장시킨 것이다. 이것은 민화만 가능한 세계인 것이다.

우리 민족이 백호나 백마 등 흰 동물을 신성시 했듯이 민화에서의 개도 백구라야 잡귀를 잘 쫓고, 집터가 센 집안, 집터는 넓으나 식구가 적은 양택에서 꼭 있어야 할 동물로 여겼다. 그리고 누런 황구는 농가에서 많이 길렀는데, 이는 다산과 풍년을 기원한 탓이다.그리고 호랑이 무늬가 있는 개는 쌀 만석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주인의 수명을 늘여주고 집안에 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를 '복덩이'로만 여기다 보니 조선시대에는 개를 의인화하여 유교정신에 입각한 오륜에까지 비유하기도 했다. 첫째, 개는 어떤 종류라 해도 주인에게는 덤비지 않는다. 즉 불범기주(不犯其主)이며, 둘째가 장유유서(長幼有序)로 작은 개가 큰개에게 덤비지 않는다는 불범기장(不犯其長)이며, 셋째는 부색자색(父色子色), 즉 새끼가 어미의 색깔을 닮는 다해서 이를 부자유친(父子有親)으로 보았다. 그리고 넷째는 때가 아니면 사랑하지 않는다는 유시유정(宥時宥情), 즉 부부유별(夫婦有別)에 해당하며, 마지막으로 일폐군폐(一吠郡吠) 즉 한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가 개가 함께 짖어댄다는 습성을 높이 평가, 붕우유신(朋友有信)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개를 집에서 기르면서도 인간의 종속물로만 인식하지 않고 동반자로 사랑해왔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같이 우리들의 사랑을 받아온 개는 민화 특히 세화(歲畵)에서는 조선시대 동국세시기에 보면 호랑이 그림은 대문에, 개는 광문에, 해태는 부엌문에, 닭은 중문에 붙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호랑이, 해태, 닭이 외부 침입자를 방어하는 것이라면 개는 우리들의 식량이 보관된 광문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개를 충복이라고 생각했다.

옛 그림에는 거의 나무아래에 있는 개를 그리고 있다. 이같은 도안의 구성은 한자권의 영향 속에서 풀이된 이론에 의한 것이다.

즉 개는 술(戌)로 쓰는데, 이 술(戌)이 지킨다는 뜻의 수(戍)와 비슷하다는데 있다. 그리고 이 수(戍)는 지킬 수(守)와 같고, 수는 또 나무 수(樹)와 동음으로 같이 쓰여 나무 아래 있는 개는 바로 '지킨다'는 의미로 통용되는 것이다. 조선 16세기 이암이 그린 모견도(母犬圖·국립중앙 박물관소장)도 비록 어미 품에 깃든 강아지와 자애로운 모습의 모견을 나무아래에 묘사하고 있지만 본 뜻은 역시 '지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개가 이렇게 '경비용'으로만 우리들이 길러온 것은 아니다. 때로는 인간과 대등하게 한 세상을 살다가는 영물로 대접하기도 했다. 우리의 민간설화에는 불교의 윤회설을 숭상해온 탓인지 '돌아가신 조상이 자손들이 보고 싶으면 그 집의 개로 환생해서 산다'는 것이다. 때문에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 잘 보살펴주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종교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한 표현임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우리들 민화에 특히 세화에 개가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외에도 새해에는 길상화로 여기는 다양한 민화가 등장, 우리 선조들의 소박한 생활상과 간절한 염원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신년을 맞는 가정에서 길상화를 집안에 장식하는 것을 단순히 집안 환경을 생각해 꾸미는 차원을 넘어 가장으로서의 염원을 담아 식구들의 건강과 행복을 챙기는 상징물로서의 의미가 있을 뿐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주는 복을 받는다는 천관사복(天官賜福)의 의미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