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1998.1.1)
"100마리 호랑이"를 기르는 여자
 
"100마리 호랑이"를 기르는 여자


시골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호랑이, 까치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파안대소하는 호랑이, 토끼에게 속아 약이 바짝 오른 백수의 왕, 곰방대 빠는 천역덕스러운 맹호. 산신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려 능청스럽게 웃고 있는 호랑이도 있고 문틈에 끼인 요물까지도 찾아낸다는 네눈박이 호랑이도 있다.

「10년지기」인 호랑이. 서공임씨(37)는 애정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새날을 연다. 국토를 닮은 영물. 그 힘찬 포효와 드높은 기상이 모두의 가슴속에 스며들기를 간절히 기원해본다. 사나운 맹수, 그러나 이웃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호랑이를 표현했던 선인들의 여유를 깨닫기를 빌어본다.
그녀는 민화를 그리며 사는 가난한 여류화가다. 조선시대 이름없는 민초들에 의해 그려졌던 그림. 양반들의 사군자와는 하늘과 땅끝 차이로 천대받았던 그림을 외롭게 전승하고 있다.

벌써 10년. 8평이 채 못되는 비좁은 인사동 화실에서 호랑이를 그렸다. 아니 그렸다기보다는 '깊은 산속'으로 숨어버린 호랑이를 찾아 나섰다. 참호랑이 개호랑이 백호랑이... 민화속으로 사라져버린 그 호랑이들을 다시 살려냈다. 이제 곧 세상밖 나들이길에 나설 '선조들의 호랑이'를 보고 있노라면 기운이 난다. 선조들의 마음도 그랬을까. 그 늠름한 자태와 광채 앞에서는 삶의 고단함도 무명화가의 설움도 다 사라지고 만다.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둘이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또래들보다 먼저 인생의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한 그녀에게 그림은 유일한 위안이자 꿈. 미대를 지망하며 그림공부를 하던 19세의 어느날. 경기도 성남의 어느 허름한 화방에서 십이지도를 보는 순간 그녀의 '민화인생'이 시작되었다.

'섬뜩했어요. 무슨 무당그림 같았죠. 화방 안을 들여다보니 또다른 그림들이 있었어요. 모란 꽃과 달, 서당의 책거리 풍경이 오밀조밀 그려진 그림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처럼 재미있고 정감이 가는 그림들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가 이걸 직접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은 갈 필요가 없었다. 바로 화방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해외 수출을 위해 다량으로 민화를 그려내고 있던 작업실. 3명의 문하생과 함께 7년간 혹독한 도제교육을 받았다. 장사로 바쁜 스승이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혼자서 터득했다.

민화의 세계는 그때까지 배워온 서양식 미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먼 곳에 있는 물건이 되레 크게 보였고 「구륵진채(鉤勒眞彩)」라고 해서 먹으로 윤곽선을 그린 뒤 물감을 서너번 덧칠하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림에 담긴 내용. 민화를 통해 복을 구하고 잡귀를 물리치던 우리 선조들은 얼핏 봐서는 무슨 뜻인지 모를 상징적인 장치를 곳곳에 그려놓았다. 수수께끼를 풀듯 그림에 등장하는 소재들의 상관관계를 요리조리 해석해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83년 호암 미술관에서 열린 「민화걸작전」은 경이로운 체험이었다. 너덜너덜한 그림첩 사이에 숨어있던 옛 민화를 찾아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 그 옛날 떠돌이 무명화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그려놓은 주옥같은 그림들. 그중에서도 호랑이 그림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수만가지 표정의 호랑이 얼굴들. 그림마다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배역도 모두 달랐다. 그 길로 인사동으로 들어간 그는 「호랑이 민화」를 전통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평생을 두고 해나갈 민화전승의 첫작업. 사방으로 호랑이 관련자료를 수집하러 다녔다. 새로운 표정, 새로운 기법의 호랑이를 발견하면 보물을 만난 듯 기뻤다.

옛작품을 그대로 재현하는 일은 까다로웠다. 세필화인데다 채색을 여러번 해야 하는 작업. 시간과 노력이 배로 요구됐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2시간씩 그렸다. 밑그림부터 채색까지 전통기법을 고수했고 바탕지도 치자와 먹을 섞어 직접 물을 들인 한지로만 사용했다.
그러나 선조들의 그림처럼 살아꿈틀대는 호랑이가 그의 손에서는 태어나지 않았다. 낙담과 실패의 연속. 밤잠을 설치며 고심하는 그에게 칠순의 노모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림을 잘 모른다만 민화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고 그려야 한다고 옛날 어느 환쟁이가 그러더구나」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민화의 겉모양만 모방하고 있었음을...

「민화는 가난한 삶의 애환을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내고 그것을 다시 한줌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민중들의 그림이었습니다. 그 신명나고 자유로운 그림들속엔 한민족이라야만 느낄 수있는 어떤 신화적인 감동이 살아있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동안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완성한 100점의 호랑이 그림. 「한국호랑이」의 저자 윤열수씨(문화재전문위원)는 「능란한 필선, 먹선과 부분담채가 싱싱하게 어우러진 서공임의 민화에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민중의 넉넉한 웃음과 해학, 자유로운 기개가 담겨있다」고 평했다.

2년전 한국을 방문했던 스페인의 왕비가 「가장 한국적인 색깔이 이 속에 살아있다」며 감탄했던 서공임의 민화. 그러나 그는 아직 갈길이 멀다고 말한다. 「하늘백성」으로 불리던 그 옛날 선조들의 착한 심성과 자연앞에 겸허한 자세로 살아야만 한점 부끄러움 없는 걸작이 탄생되는 법. 오늘의 시련은 자신을 포함한 우리 후손들이 그간 너무 많은 죄를 짓고 살아왔음을 깨닫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세상의 푸대접속에서도 올곧은 민화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서공임씨. 그 혼신과 열정으로 탄생된 「100마리의 호랑이」가 정초 세상나들이를 나선다. 꾸짖음과 기상과 여유가 있는 얼굴로.

  글 : 김윤덕 사진: 우철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