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섬생명사외보
2004년통권17호
"그들, 세련된 풍류를 공모(共謀)하다"
   
 
 


디자이너 장광효 & 민화작가 서공임
그들, 세련된 풍류를 공모(共謀)하다
바람과 그 바람에 실려온 인연들이 한데 모여 세월에 정제되었을 때, 비로소 곁에서 빛나는 이름.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봄으로써 터득한 이들의 아름다운 동행에 관하여..

절제미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다분히 모던한 공감.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곳에서 문득 화려한 민화 한 점과 조우한다면. 봉황과 호랑이, 까치와 모란, 싱싱하게 입을 벌린 양귀비 하나??둘…. 민화의 고색창연함을 덧입은 화이트 셔츠는 세상에 둘도 없는 절묘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니 이제 당신, 이 모두를 빚어낸 ‘손길’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벌써 15년. 디자이너 장광효와 민화작가 서공임은 그렇게 그들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왔다. 트랜드의 최전선이라는 ‘패션’에 민화를 접목시킨 장광효도 그렇지만, 전통 복식도 아닌 그야말로 초현대적인 옷에 다분히 옛스러운 붓놀림을 감행한 서공임도 결코 쉽지만 않은 결정이었을터, 하지만 둘의 의기투합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절 찾아오신 선생님을 뵙곤 좀 놀랐지요. 저도 모르게 제 작업이 무척 고루하다고 생각했던가 봐요.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죠. 민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저 보다 한 수 위신 거예요. 뭐랄까, 잊고 지내던 동지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그랬다. 둘의 인연에 굳이 공로자를 찾으라면, 장광효의 민화에 대한 애정일 게다. 평소 전통적인 그림과 색채, 특히 독특한 개성의 민화에 관심이 컸던 그는 우연히 접한 그녀의 그림을 보고 ‘아, 저거다’ 싶었단다. 그러곤 무턱대고 찾아간 그녀의 작업실에서 그는 시대니 장르니 하는 잣대를 넘어 그냥 ‘좋은 그림’ 들을 맘껏 접할 수 있어 신났고, 마치 예정되었던 듯 자신의 옷에 그녀의 그림을 담아줄 것을 권유했다.

"우리는 민화의 가치를 너무 폄하하는 경향이 있어요. 미적인 부분보다는 단순히 ‘주술’의 수단이나 배경쯤으로 터부시하는 면도 많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그 단순하면서도 화려한 색채가 서양의 어느 미술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단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그것을 혼자만 알고 있기 싫었던가 봐요."
해서 장광효가 선택한 것은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 즉 ‘옷’으로 민화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화법을 더욱 빛나게 만들어 준 것은 자연과 동식물의 표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서공임의 섬세한 붓 터치였다. 그렇게 둘의 공동작품을 선보여온 지 십여 년. 처음 큰 봉오리의 꽃을 셔츠에 그려 넣고 패션쇼를 할 때만 해도 주위 반응은 다소 ‘생소하다’란 것에 그쳤었지만, 지금 이 순간 거리에는 각양각색의 꽃이 프린트된 셔츠가 넘실대고 있다. 굳이 전통 민화에 담긴 상징성과 예술성을 말하지 않아도, 현대적인 라인에 스며든 전통 문양과 색채는 누가 뭐랄 것 없이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파격을 말하던 디자이너가 전통 민화를 옷에 덧입히고, 지극히 개인적인 작업을 고수하던 민화작가가 무대 위에서 ‘움직이는’ 자신의 그림을 만나는 일. 하나의 대상에 함께 감흥 하는 ‘동지’로 시작된 그들의 항해가 이렇게도 멋지게 순항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별한 장식이 없이 단순한 그대로 속내가 비쳐 나오는 무엇. 동화 같은 표정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리네 꽃과 새, 벌과 나비, 어쩌면 그것이 장광효와 서공임이 반한 민화의 매력, 아니 마력 아닐는지. 올 가을도 여지없이 향기로운 들꽃 천지일 장광효의 패션쇼. 언제나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풍류 가득한 이야기를 은근한 자태 속에 숨겨둔 그녀, 서공임이 웃고 있을 것이다.

글|홍지은 사진|이규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