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2006.1)
서민들 액운막고 소망이루게 띠그림展 열죠
  친근하고 정겹다. 해마다 이맘 때면 늘 든든하고 풍요롭게 다가온다. 원래 백성이 그렸다.
온 가족의 소망을 담았고 행운과 건강을 기원했다. 집안의 액운을 물리쳐 주고 무병장수를 염원했다.

맞다. 민화(民畵)라 한다. 좋은 일을 바라고 나쁜 일을 막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그려졌다.
한 해가 시작될 때, 액을 막고 복을 누리기 위해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다.



▲ 민화 인생 27년째인 여류 민화작가 서공임씨. 매년 띠그림 전시로 주목을 받는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개그림' 전시를 열고 있는 것. 그의 그림은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도 소장할 만큼 국내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다. 특히 올해의 유니세프카드에 그의 민화가 실려 세계 각국의 어린이 생명을 구하는 데 많은 역할을 하게 된다.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요즘 들어 전통 민화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제대회의 휘장이나 행사장의 포스터 등만 하더라도 민화적 배경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IMF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자 기업인들은 사업번창을 위해 너도나도 민화를 찾는 경향이 부쩍 늘었다. 여기엔 맛깔스럽게 잘 버무려진 창작 민화의 발전이 한몫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류 민화작가 서공임 (47)씨. 특유의 정성과 섬세함으로 우리의 민화를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다. 고교 졸업 직후 스무살 처녀 때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꼭 27년째 전통 민화를 그려오는 셈. 특히 1998년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띠 그림전을 시작으로 매년 새해 초 어김없이 우리 일상과 반가운 ‘띠그림' 전시를 열어 눈길을 끄는 작가다. 올해에도 그냥 있을 리 없다. 병술년의 개그림 민화 등을 포함, 서민들의 새해 소망과 벽사를 기원하는 뜻에서 길상화(吉祥畵) 49점을 선보이고 있다(2월5일까지·서울 종로구 중학동 한국일보갤러리).

지난주 서울 종로구 효자동 작업실에서 서씨를 만났다. 작업실이 독특했다. 전통 한옥에다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도록 현관 천장을 유리로 장식했다. 어디서 본 듯한 사진이 눈에 확 들어온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지난 96년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 부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서씨와 함께 찍은 사진. 당시 국왕 부부는 유럽에서 서씨의 명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터라 방한한 김에 서씨 작업실에 일부러 들렀다. 이 자리에서 소피아 왕비는 30분 동안이나 무릎을 꿇고 민화 감상을 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고 서씨는 왕비에게 그림 한 점을 기증해 국내와 스페인 언론에도 소개됐다.

먼저 이번 전시회의 분위기를 물었더니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님 등 각계 어른들께서 많이 찾아주셨고 아무래도 새해 벽두이고 개가 우리와 친숙해서인지 일반 관람객들도 많네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개는 옛날부터 집을 지키고 사냥, 안내, 수호신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잡귀와 병도깨비, 요귀 등 재앙을 물리치는, 즉 재난을 경고·예방해 주는 것으로 믿어 왔지요.”라고 덧붙인다. 아울러 까치와 호랑이 그림을 비롯해 용, 해태, 닭, 모란, 봉황, 거북이, 사슴 등도 우리 길상화에 자주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띠그림으로 매년 전시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 아니냐고 했다.“8년 전 호랑이 길상화전을 열면서 호랑이를 무려 100마리나 그렸지요. 이때 얻은 별명이 ‘호랑이 100마리를 키우는 여자'였어요.”라며 웃는다.

서씨의 좌우명은 ‘준비하고 있어야 기회를 맞는다.'는 것. 정말이지 27년 동안 연중무휴로 그림을 그려 왔기에 언제 어디서든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민화 인생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뭐, 변변치 못해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는걸요.”라며 애써 겸손한 모습이다. 잠시 회상에 젖더니 “여든일곱 된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지요. 원래 어머니가 보호자인 줄 알았는데 지난해 어머니가 (골다공증으로)쓰러지고 나서는 제가 보호자라는 걸 알았어요.”라고 했다. 인생의 한 깨달음을 느꼈을까. 이어 “어머니는 저를 안 낳으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그래서 덤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인내심이 저절로 강해지더군요. 아마 어머니를 보호해 드리려는 마음도 그런 데서 생겼나 봐요.”라고 말꼬리를 약간 흐린다.

서씨는 전북 김제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농사를 짓던 평범한 서씨 가족은 서씨가 중학교때 경기도 성남으로 이사를 한다. 서씨는 어릴 적부터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동네 아이들의 미술 방학숙제를 죄다 해줄 정도로 타고났다.

취직을 해야 한다는 부모의 권유에 성남 제일실업고에 진학했다. 하지만 공부는 뒷전이고 책가방에 갱지 노트를 넣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들판의 꽃과 나무를 그렸다. 수업이 끝나면 남한산성으로 어서 달려가 풍경화며 수채화를 그리기 일쑤였다.79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4월 서울시내 화방에 미술재료를 사러 갔다가 우연히 민화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접했다. 그 길로 곧장 찾아갔다. 말로만 듣던 민화공장이었다. 미군들을 상대로 파는 이른바 ‘쫑쫑이 그림'을 생산해 내는 곳. 처음에는 접시 닦고 걸레질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우직하게 7년을 버텼다. 불교화, 이발소 그림, 일본 수출용 그림 등 손을 안댄 그림이 없었다.

그러다 스물여섯 살에 개인 작업실을 마련했다. 이어 홍익대 미대의 송수남 교수한테 2년 동안 수묵화를 배웠다. 드디어 86년 한국민화 연우회전을 시작으로 세상에 명함을 내밀었다.88년 서울올림픽 때에는 초대전을 가졌고 93년 이후에는 매년 단체전·초대전을 열면서 많은 팬들을 확보해 나갔다.

특히 98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갤러리에서 개최된 ‘ 서공임 민화 호랑이전'은 빅히트였다.IMF 외환위기 직후의 침울한 사회 분위기에 부자가 되는 ‘웰빙민화'를 떡하니 내놓아 인기폭발이었다. 이때부터 신문과 방송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올림픽을 치르고 난 후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흐름이 생겨났지요. 가구나 도자기 등에도 민화가 많이 응용됐어요.”

그의 그림은 어떤 사람이 소장하고 있을까.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인, 언론인, 정치인 등은 대부분 소장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외국인 초청 행사가 많은 부산 하야트호텔이나 제주 그랜드호텔 등에서도 장식용으로 민화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와 지난해 8월 열린 세계의료윤리학회에도 협찬출연하는 등 손길은 더욱 바빠진다.

서씨는 아침 9시면 작업실로 출근해 밤 12시가 돼야 퇴근한다. 토·일요일도 쉬지 않는다. 스스로 일 중독증 환자란다. 동방대학원과 연세대·동국대 사회교육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잘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에서다. 자신의 인생은 기다림과 인내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무(無)에서 유(有)도 생겼다. 명성과 덕, 마음의 부유함, 주위 친구들이다. 학연도 지연도 없이 맨땅에서 시작해 오늘날 이 자리에 온 것만 해도 커다란 복이 아니냐고 했다. 또 하나의 커다란 유(有). 서씨의 민화가 올해 유니세프카드에 실려 세계 각국의 어린이 생명을 구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이 카드에는 그동안 고흐·샤갈·피카소 등 세계적인 미술가의 명작들이 실렸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실명 민화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We팀장 k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