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저널 (2005.2) "미술과 커피의 아름다운 랑데부"
   
 
 

커피를 단순히 문화,예술적인 코드로 이해하는 선을 넘어 두분야의 직접적인 접목을 시도해 온 카페 컨설턴트 한창완씨의 오랜 작업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
모 방송사 PD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서공임 작가와 독특한 작품세계로 눈길을 끈 장은경 작가를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커피 물로 그린 작품을 전시하기로 확정한 것.
민화와 비구상 분야에서 독보적인 이력을 쌓아온 국내 유명 작가가 커피를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이슈가 될것으로 보이지만, 한창환 씨는 "보다 면밀한 계획으로 커피와 미술, 두 분야 모두에서 호평을 받을수 있는 성공적인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표면적으로만 보았을 때, 서공임 작가와 장은경 작가는 극과극의 지점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볼수있다. 전통의 맥을 잇는 서 작가와 전통의 부정 혹은 전복을 기치로 내건 '다다'를 내포한 장 작가의 작품세계는 어찌보면 출발부터 전혀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이 소격한 분야를 커피가 한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커피라는 질료를 공통분모로 한 두 작가의 작품세계가 자뭇 기대된다.
인사동에 위치한 서공임 작가의 작업실에는 이미 완성된 작품들과 진행 중인 작품이 여러점 놓여 있었는데, 한 눈에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준잇는 그림들임을 확인할수 있었다. 처음엔 커피를 질료로 길들이는 데만도 애를 먹던 두 작가는 이제 자유자재로 작업에 이용할 만큼 익숙해졌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커피 자체가 지닌 독특한 성분에 흠뻑 빠져 있는 중이다. 실제로 작업 중에 커피를 끼고 살다시피 한다는 커피마니아, 두 작가의 커피 그림에서 커피 향이 물씬 배어난다.


COFFEE: 우선 두 분의 기존 작품 세계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커피로 그림그리기를 시도하기 이전엔 어떤
작업들을 해 오셨는지요

서공임: 저는 열아홉 살에 우연한 계기로 민화에
입문한뒤 30년 가까이 이 작업에 매달려 왔습니다
민화란 본래 정통회화의 조류를 모방하여
생활공간의 장식을 위해, 또는 민속적인 관습에
따라 제작된 실용화를 말하는데,조선 후기
서민층에 유행했죠.
여염집의 병풍이나 족자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정식 그림교육을 받지 못한 무명화가나 떠돌이 화가들이 그렸기 때문에 정통회화에 비해 수준과 시대 차이가 심한편이죠.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호랑이나 용 그림은 민화가 지닌 민간신앙에 기반한 주술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어요. 호랑이는 재앙을 막아주고, 용은 복을 준다는 믿음이 있어 새해에 대문앞에 붙여놓곤 했었죠. 그래서 민화는 액을 물리치고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그림들이 대부분이예요.
저는 20여년 전통 민화를 이해하고 소화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그 이후로는 민화를 다양하게 변용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장경은 :
저는 이번 '커피그림'제안을 괸장히 반갑게 받아들였어요. 제가 끊임없이 해오고 있는 작업이 '질료를 통해 사물을 회화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질료의 발견은 저 자신에게도 즐거운 일이었어요.
제 작품은 다분히 추상적이라 할수있는 '비구상'과 연결되어 있다고 할수 있는데요, 다양한
질료를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오고 있어요. 3차원의 현실을 2차원인
회화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흔적을 담기 위해 '선'을 이용하여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 한창환씨가 커피그림을 제안한 것도 제 작업의 특이성 때문일거예요.

COFFEE: 두 분은 그동안 교류를 해오셨나요?어떻게 이번 커피그림 기획에 참여하게 되셨습니까?

서공임: 작품은 본 적이 있지만, 장 작가와 직접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예요. 전혀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작업 하는지, 커피라는 질료를 어떤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도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서 무척 반가워요.사실 같은 분야라면 경쟁심이 전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다소 부담도 되었을텐데, 한쪽은 서양화 한쪽은 동양화라 마음이 놓여요.(웃음) 이번 기획은 사실 한창환씨에 의해 5~6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것인데, 제가 게으름을 피운 탓에 이제야 본격적으로 윤곽이 드러나게 되었죠.

장경은: 서 작가님에 대해서는 이미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민화 쪽으로 의미 있는 족적을 쌓고 계시고, 그 분야에서 거의 독보적인 성과를 갖고 계시다구요.
이제 얼굴도 뵙고 했으니, 의기투합해서 좋은 작품들 그려 내야죠. 어떠셨어요?
커피로 작업 시작할때 어렵지 않으셨어요?

서공임: 사실 저는 커피를 작업하는데 처음 이용하는건 아니예요. 민화는 한지를 쓰는데, 요즘은 한지가 하얗게 표백되어 나오기 때문에 옛것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누렇게 만들거든요. 담배를 이용해 물들이기도 하는데, 저는 치자와 커피를 이용해 물을 들여 왔죠. 하지만 커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예요

장경은: 제가 천착하는 작품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는 작업에 앞서 물성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하는 편이예요. 재료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본질을 담을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저에게 커피라는 재료는 즐거운 도전이었죠. 하지만 처음엔 쉽지 않았어요. 명도나 채도를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을것도 같았고..아무튼 커피로 그림을 그린다는게너무 막연하더라구요.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격었죠. 진한 원액을 써보기도 하고, 락스를 끓여서 입혀보기도 하고... 그렇게 다양한 시도 끊이 지금은 커피를 가지고 어떤 작업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해졌어요. 말하자면 저만의 노하우가 생긴 셈이죠. 저는 안료와 화공약품을이용하여 필요한 색을 직접 만들어 쓰는데, 커피는 단색인것 같지만 굉장히 다양한 톤을 낼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어요. 정말 무수한 브라운 톤이 만들어지더라구요. 문제는 보존이었죠. 시간이 지나면 발색,퇴색이 되어 처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변하더군요. 그런데 재밌는게 뭔 줄 아세요? 그렇게 변색이 되면서 다양한 색이 나온다는 거예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색.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질료. 더구나 눈으로만 감상하는것이 아닌, 코로도 맡을수 있는 향기 있는 그림이라니, 얼마나 신선해요?

서공임: 보존의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농산물이다 보니 부패되거나, 변질될수 있거든요. 그러한 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 겠지요. 저도 커피로 그림을 그리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특히 먹을 사용 하는 저는 농담을 조절할 수 있는 커피에 그다지 이물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한지는 흡수가 잘 되기 때문에 아마 장 작가님 보다 재료를 이용하기가 수월했으리라 생각해요. 한국 전통적인 종이 한지가 서양의 기호 음료인 커피와 잘 어울린다는 것은 무척 신선한 충격이었죠.

장경은: 맞아요. 저는 진한 농도를 표현 하려면 수십 번 덧칠을 해야 되거든요.
서작가님은 한지에 그리시니 그런 점에선 저보다 한결 편리하시겠어요.

서공임: 한지에 커피로 그림을 그리니 마치 나무에 인두를 이용해 글자나 그림을 새긴 것 같은 효과가 나오더군요. 왜 절이나 국립공원앞에서 파는 나무 장식물 있잖아요. 그림이 아니라 찍어낸듯한 효과. 목판화 같은 느낌도 좀 나고..

COFFEE: 사실 커피숍은 단순히 차를 마시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문화, 예술의 산실이기도 합니다. 과거 유럽 카페는 다양한 분야희 예술가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영감을 얻었던 문화공간 이었으니까요. 이번 기획은 대중들에게 커피의 문화적 측면을 강조하고, 커피가 예술과 어떤 방식으로 접목될수 있는지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라 생각 합니다. 두 분은 커피로 그림을 그리기
이전에 평소 커피를 얼마나 즐기시는 지요?

서공임: 보통 작가들이 밤샘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커피를 거의 사발로 마시는 분들도 많은 거예요. 저역시 그렇구요. 이번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커피 교실에서 머피에 대해 배우기도 했어요.

장경은: 저는 집에 다양한 커피기구를 갖춰놓고 커피를 마실정도로 커피를 좋아해요. 종종 직접 블렌딩도 하구요. 작업 중엔 거의 달고 살 정도니까 마니아 수준이라 할 수 있죠. 이번 작업을 기회로 커피에 대해 더 많이 공부하게 되었죠. 마시는 음료로써나, 그림 재료로써나 알면 알수록 신비로운 물질인 것 같아요.

COFFEE: 서 작가님은 민화 작업만을 해 오셨는데, 사실 민화를 포함한 우리 전통 예술이 서양 문화 보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소외되기까지 하는것이 현실 아닙니까.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 미술을 알리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계십니까?

서공임: 제가 속해 있는 민화 분야 만을 좁혀서 이야기 한다면, 민화가 외면당하고 있는 데엔 우선 작가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자기 것만을 고수하려 하기 때문에 발전이 없는 것이지요. 물론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훈련하는 것은 필요하며 당연히 선행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전통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흡수 되려면 함께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각,서양화 등 다양한 분야를 이해하면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민화를 현대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것은 20년 넘게 오로지 민화 하나만 붙들고 정석대로 훈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아있어도,죽어서도 민화인'입니다. 기본이 탄탄하게 뒷받침 된다면 여러문화를 수용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뿌리만
든든하게 박혀 있다면 얼마든지 많은 가지를 높고 넓게 뻗을 수 있는 것처럼요.

COFFEE: 장 작가님은 질료에 많은 관심을 갖고있다고 하셨는데, 커피라는 질료를 어떤 형태로 이용해 연장선을 그려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장경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물질이 작품으로 끌어왔을 때 훌륭한 재료가 되는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사물 혹은 세계의 분질이 남긴 '흔적'을 표현하기에 '선' 이라는 것은 가장 적합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외국에도 커피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내 선에도
향을 입혀보자'고 결심했습니다. 행은 흔적이라는 메타포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흔적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제 작업은 커피라는 질료가 지닌 본성을 활용하기에 적합하죠. 사실 평소에 커피를 즐겨 마시긴 했지만, 이번 작업으로 커피가 지닌 문화적인 시너지에 대해 절감했습니다.

COFFEE: 커피그림 전시는 오는 11월에 있을 커피전시회 '서울카페쇼'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림을 보러온 관람객이 아닌, 순수한 대중이 전시를 보게 되기 때문에 여태까지의 전시와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띠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가 두 분 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면, 어떤 효과를 끌어내리라 기대합니까?

서공임: 우선 전통미술인 민화를 커피로 그린다는 것은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이는 외국인들에게도 신선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보다 외국인들이 오히려 우리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스페인 국왕부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소피아왕비에게 제 작업을 선보인 일이 있었습니다. 민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있더군요. 놀라웠던 것은 제가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여왕이 무릎을 꿇고 제 옆에 앉아 제 작업을 지켜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문화에 순수한 경외심을 표현한 것이지요.

다양성의 세계에서 커피는 더 이상 남의 나라 것만이 아닙니다. 민화가 지닌 본질적인 의미를 놓치지 않는다면 커피로 그리는 그림은 먹으로 그릴 때보다 큰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전만 10번을 넘게 가졌고, 지방에서도 전시회를 많이 열었는데,20년 전과 비료하면 대중들의 문화적 욕구도 매우 성장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어요. 이번 전시회는 대중들로부터 커피와 미술 두 분야 모두 관심을 이끌어낼 것으로 확신합니다.

장경은:
한국의 전시문화는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저 그림 몇 점 감상하는 것일 뿐인데도, 사람들은 갤러리에 발을 들여놓는데 부담감을 느끼고 특별한 형식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걱정하죠,
커피도 마찬가지예요. 인스턴트 믹스가 아닌 원두를 즐기는 것에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저 한 잔의 커피를 즐기는 것일 뿐이데.
하지만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갤러리를 찾고, 허영심에 번거로운 과정을 감수하면서까지 원두커피를 마시는 것은 어쨌거나 문화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고급문화가 일상으로 들어오기 위한 과정일 테지요, 이번 전시는 커피나 미술과 같은 고급문화를 끌어내려 대중 곁으로 다가간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겁니다. 어떤 문화가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아래로' 내려와야 하니까요, 대중을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다가가는 전시. 거품을 걷어내고, 좀 더 솔직하게 대중과 마주하는 전시. 그러므로 이번 전시는 커피와 미숙의 만남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어떤 테두리 안에서 소수만을 위해 존재해 왔던 예술이 대중과 마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