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2005.1) 민화 속으로 날아온 새벽닭
   
 
▲ 천계시명(天鷄始鳴) // 감지. 니금, 경명주사 / 24 X 40cm

서공임 '민화' 닭그림 초대전을 다녀와서

지난 8일 한국일보갤러리에 들어섰더니 마치 닭장에 들어선 느낌이 듭니다. 왜냐면 사방에서 닭들이 삐약삐약 병아리와 함께 행복하게 노닐거나 하늘을 향해 힘차게 울고 있거든요. 설 전에 만난 갤러리의 닭들은 흔히 ‘닭대가리’로 폄하되던 그런 예사 닭들이 아니었습니다. ‘군계일학’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바꾸어 버리는 영물인 닭을 보면 나도 몰래 행복해지고 맙니다.

요즘은 떡국이나 냉면, 만둣국에 보통 쇠고기를 넣지만 꿩고기를 넣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꿩은 귀하고 비쌌기 때문에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말이 있듯 닭은 일반 서민들과 함께 해 온 가축입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닭이 예로부터 호랑이와 함께 귀신을 쫓고 복을 부르는(벽사초복) 영물로 여겨져 정초에 대문이나 집안 곳곳에 그려서 붙이던 세화의 하나였다니 또한 이해가 선뜻 안 갑니다. 그건 아마 닭은 다섯 가지 지혜를 갖춘 덕금(德禽)으로 여겨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12지 동물 중 열 번째로 뽑힌 행운을 얻었겠지요.

암흑 속 금빛의 닭 그림 ‘천계시명(天鷄始鳴)’은 제목 그대로 암흑 속에서 광명을 부르는 듯합니다. 감지에 단순하기 그지없는 색상 한 두 가지로 금세라도 홰를 치고 날아갈 것 같은 그림은 아마 우리 민화가 아니면 어느 세계적인 화가도 표현해내기 힘들 듯싶습니다.

 

 

 

 

옆의 그림 ‘십이지 닭'은 사람 형상에 머리는 동물형상인 십이지수호신을 재현한 것이네요. 부처의 덕을 기리기 위해 절에서 사용하던 깃발의 일종으로 서쪽에서 오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민화의 특징 중 하나는 원색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절에 가면 볼 수 있는 단청도 바로 원색입니다. 주로 서민들이 그렸던 민화는 색상 배합이 어려워서 그랬을까요? 물론 그런 측면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민화는 당시 민중들의 주술적 신앙이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에 민간 신앙적 의미를 갖고 있는 오방색을 그대로 사용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화에는 어둡고 칙칙한 색이 거의 없고 모든 사물이 밝고 명쾌합니다. 사물 하나하나의 존재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했기 때문에 어느 한 색이 다른 색으로 인해 약화되지 않도록 그렸습니다. 따라서 민화를 보면 모든 색채를 강렬한 색상대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 십이지 닭 // 한지. 수간분채. 먹 / 50 X 74cm

▲ 동틀녘의 수탉 // 요철지. 수간분채. 먹 / 31 X 41cm
‘동틀녘의 수탉’은 정초의 의미에 딱 들어맞는 그림입니다. 요철지에 울뚝불뚝 곧 밖으로 날아 나올 것 같은 생동감이 넘칩니다. 선명한 닭 벼슬과 날카로운 닭 발톱은 문무를 겸비한 당시 민중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인간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시대에야 한 가지 전문성만 가져도 나름대로 사는데 지장이 없지만 전통시대에는 ‘전인적인 인간’을 최상의 목표로 삼았답니다.

수탉의 붉은 벼슬은 이름이나 생김새가 벼슬(冠관)과 통하므로 벼슬을 얻는다는 상징성을,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은 무관을 상징하였답니다. 전통시대에 최고의 가치는 관직으로 입신출세하는 거 이상이 없었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다양화 되도 복잡해진 요즘 세상의 가치관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세계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공계(公鷄) // 한지. 수간분채. 먹 / 39 X 45cm
위의 그림 ‘공계(公鷄)’는 전통시대의 염원인 입신출세와 부귀공명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는 그림입니다. 수탉이 운다는 것을 뜻하는 공계는 공(公)과 功(공), 운다는 鳴(명)과 名(명)의 음이 같은데서 착안하여 부귀공명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학문과 벼슬에 뜻을 둔 사람들은 집에 이런 그림을 많이 걸어놓고 용맹정진 하였겠지요.

민화의 특징 중 또 하나는 다양한 새나 꽃이든 어느 것 하나를 그려도 사실적 묘사보다는 위의 닭 그림처럼 대상이 갖는 '의미 있는 그림'이랍니다. 즉 소망하거나 염원하는 마음의 크기에 따라 대상이 과장되어 표현되지요. 모든 것이 그림이 담고 있는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민중들의 마음을 그린 게 바로 '민화'라는 것입니다.

▲ 꿈 // 요철지. 은. 수간분채. 먹 / 39 X 46cm
베갯모에 보통 원앙을 많이 수놓습니다. 그래서 원앙침이라는 말이 있지요. 원앙처럼 금슬 좋게 행복하게 잘 살라는 의미이겠지요. 그러나 닭도 베갯모에 많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 쌍의 닭이 대신한 베갯모는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산다복을 염원하는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전통시대의 다산은 바로 생산력과 직결되었지요.

수십 년 전 경제는 산술급수적인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하여 산아제한 정책으로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고 하여 주렁주렁 달린 애라도 많으면 방 얻기도 힘들었으며 마치 야만인 같은 취급을 당하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제 살기도 힘들다고 아이 생산을 포기한 파업자들이 점점 늘어나서 사회문제화 되고 있어 나라에서 '쌍계침'이라도 나눠주고 생산을 독려해야 할 판입니다.

▲ 황계도(黃鷄圖)의 일부 // 한지. 수간분채. 먹. 니금 / 360 X 128cm
두 달 꼬박 작업하여 완성했다는'황계도(黃鷄圖)'의 일부입니다. 전통적 염색법에 따라 먹물로 한지를 먼저 물들인 다음 노란 물감으로 닭을, 옆으로는 까치들을 그려 넣은 작품입니다. 27년이라는 화가의 내공이 빚어낸 역작으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감탄사가 연발될 것 같은 작품이라는 감흥을 안겨주는 대작입니다.

열아홉 꿈 많던 시절에 그림을 시작한 그에게 필자는 '꿩 대신 닭'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대학진학을 가난 때문에 포기하고 시작한 게 소위 '정통그림'이 아닌 민화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화단에서는 그의 그림을 '닭 보듯' 하거나 그림으로 인정해주지 않은 서러움도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인식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한국화라는 말 대신에 동양화를 고집하는 사대주의적인 동양화가나 서양화가가 있다면 문제이겠지요.

화가 서공임(45)은 해학과 익살, 풍요로움이 듬뿍 담긴 민화를 그리고 있어서 오히려 다른 외국작가들이 관심을 갖고 교류를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해외나들이를 자주 해야 하는 오늘날 요구되는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인 작가'가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관람 내내 들었습니다.

▲ 화기애애 // 한지. 숙산분채. 먹 / 39 X 45cm
닭띠 해인 올 한 해, 위의 그림처럼 화기애애한 기운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병아리가 두 마리밖에 없네요? 암탉의 표정이나 모양새로 보아 아마 대여섯 마리 이상은 품고 있는 듯합니다. 장닭의 거만할 정도로 의기양양 자랑스러운 자태가 부럽군요. 신자유주의시대 가족상이나 아버지 상하고는 매우 대조되는 늠름하고 패기 넘치며 화기애애한 모습, 바로 앞으로의 우리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지난 1월 5일 시작된'닭이 울면 乙酉年 새벽이 밝아온다' 서공임 민화 닭그림 초대전은 2월13일까지 한국일보갤러리에서 열리며 토요일은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