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뉴스 (2004.12) 2005년 올해는 을유년
   
 


2005년 올해는 을유년(乙酉年). 12지(支) 중 닭띠에 해당하는 해입니다.

현대 도시인, 특히 도시 어린이들에게 닭은 '먹거리'의 의미를 빼곤 낯선 존재지만 근래까지 우리 민족에게 닭은 가장 친한 동물 중 하나였습니다. 집에서 길러 계란과 고기를 얻었고, 캄캄한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을 불러오는 상서롭고도 신통한 존재로도 여겨졌습니다.

선조들은 닭이 5가지의 덕(德) 을 지녔다고 생각했습니다.

닭 벼슬은 문(文), 발톱은 무(武), 적과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 먹이를 보고 "꼭꼭"거리며 무리를 부르는 것은 인(仁), 때를 맞춰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것은 신(信)이라 했습니다. 12지 동물 중 10번째인 닭은 시간으로는 오후 5~7시(酉時), 달은 음력 8월, 방향은 서쪽을 지키는 신입니다.


[서울대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닭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닭들]

◇역사 속의 닭

닭은 언제부터 한반도에 있었을까. 문헌상으로는 삼한시대부터 등장하지만 확실하게 열려진 것은 없습니다. 닭이 본격적으로 우리 문화의 상징적 존재로 등장한 것은 '삼국유사'의 혁거세와 김알지의 신라 건국신화부터. 닭은 이들 신화에서 임금이나 왕후가 나타날 때 미리 징조를 보여줍니다. 고고학적으로도 경주 천마총에서는 수십개의 계란이 든 단지가 발굴된 바 있고, 삼국유사에서 백제의 멸망을 예시하는 것도 닭이며, 고구려 무용총 천장에도 닭 한 쌍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러 자료로 미루어 볼 때 닭은 고려시대에 대중적으로 보급된 것으로 보입니다. 시간에 맞춰 우는 닭을 길러 시간을 알았고, 궁중에서는 한해가 끝날 때 잡귀를 몰아내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행사에 닭을 제물로 썼습니다.

닭은 이후 문학작품, 설화, 민요 등에 수없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닭에 대한 '생각' 길(吉)한 것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는 흉한 것(암탉소리 등)으로까지 변형되기도 합니다.

[인터넷독점] "새날을 여는 닭"

[화보] "꼬~끼오, 을유년 닭 보러 오세"

◇민속에서의 닭

닭은 무엇보다 울음소리로써 새벽을, 빛을 불러옵니다. 새벽, 즉 시간을 알려주는 현대판 '자명종'인 닭은 점차 상징화됐고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의 능력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무속신화나 건국신화에서는 천지개벽이나 왕의 탄생을 알리는 존재로 등장합니다. 실제 제주도 무속신화인 천지황 본풀이에서는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우니 갑을 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닭은 악귀를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설날이나 대보름날 새벽에 우는 첫 닭의 울음소리로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습니다. 또 음력 정월의 첫 닭 날에는 부녀자들이 바느질 등 일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흉한 모양이 된다고 해 아무일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서공임 씨 "닭이 울면 을유년이 밝아온다" 展

닭은 외형과 성격, 습성 등을 토대로 다른 소재와 함께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관(冠)을 닮은 벼슬이 있는 닭은 역시 관을 닮은 맨드라미와 함께 그려져 입신출세를 상징합니다. 또 모란과 함께 그리면 부귀를, 국화와 함께 하면 장수를, 석류와 함께 그려질 때는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닭은 세시풍속에도 깊이 파고 들었습니다. 결혼식날 초례상에는 반드시 닭이 올랐고, 신랑신부는 닭을 가운데 두고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중요한 의식인 결혼식에서 닭이 활용되는 것은 그만큼 닭을 길조라고 생각했기 때문. 민속놀이 중에는 지금까지도 성행하는 닭 싸움, 훈련시킨 닭끼리 싸움을 붙여 즐기는 투계놀이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닭이 좋게만 인식된 것은 아닙니다.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고, 오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해가 진 뒤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도 합니다. 특히 암탉을 여자에 비유, 여성을 천시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암탉이 울어 날 샌 일 없다' '암탉이 울어 날 샌 일 없고, 장닭이 울어 날 안새는 일 없다'는 속담 등이 이런 개념을 반영한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생태학적 닭

현재의 닭은 당초 인도, 동남아시아에서 야생하는 들닭이 사육, 계량된 것으로 봅니다. 척추동물인 닭은 잘 날지는 못하지만 다리는 튼튼해 달음질에 적당합니다. 주둥이는 짧고 가슴 앞면에 먹이를 저장하는 공간이 있으며 귀소본능도 있습니다. 먹이는 다양한 곡물과 야채, 민들레 등 들풀, 보리싹, 어분 등을 주로 먹습니다.

고기는 소, 돼지에 비해 지방이 적고 맛이 담백해 소화흡수가 잘됩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소, 돼지에 이어 널리 식용되며 백숙, 찜 등 다양한 닭요리가 개발됐습니다. 요즘은 몇 가게 건너 '치킨집'이 생길 정도로 단골메뉴가 됐고 닭갈비, 닭죽에 이어 2004년에는 '불닭'이라는 조리법이 등장해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지난해 우리 국민의 닭 소비량은 총 4억9천만 마리, 하루 평균 130만 마리였습니다.

◇닭에 관해 알고 싶은 것들

닭에 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과 함께, 흔히 알려진 속설들은 얼마나 근거가 있는 이야기들인지 짚어 보겠습니다.

1. 닭 머리는 정말 나쁠까?

흔히 머리가 안좋은 사람을 닭에 비유한다. 닭의 머리는 정말 나쁠까. 답은 '그렇다'에 가깝다고 합니다. 축산연구소에서 가로.세로 60㎝ 크기의 유리판 뒤에 먹이를 놓고 실험한 결과 닭은 계속 유리만 쪼았다고 합니다. 뛰어 넘을 수도,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뒤돌아 섰다가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유리 쪼기를 몇시간 동안 반복했다고 하네요.

그래도 서열의식은 강해서 한번 싸워 위계가 결정되면 그 순서를 무려 95마리까지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이 되면 싸웠던 기억을 잊고 마주칠 때마다 서열다툼을 합니다.

2. 불만 끄면 '쿨쿨'

닭은 동공조절 능력이 없어 밤에 앞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불이 꺼지면 무조건 앉아서 잡니다. 양계장에서 항상 불을 켜 두는 것도 닭이 잠을 자지 않고 알을 계속 낳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잠시라도 불을 끄면 밤이 된 줄 알고 털갈이를 시작하는데 그러면 산란이 중지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육계를 키우는 양계장에선 불을 거의 꺼둡니다. 움직임이 많아지면 체내 영양분 소비가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3. 새벽을 알리는 닭, 낮에는 왜 우나?

사실 닭은 새벽에도 울고 낮에도 웁니다. 다만 빛에 민감해 새벽을 일찍 감지, 일어나자마자 첫 울음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닭이 일찍 일어나는 것은 뇌하수체에 있는 멜라토닌이란 호르몬 때문. 밤 동안 분비가 많아졌다가 동틀 무렵 빛을 받으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해 닭을 자극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하지가 지나고 일출시각이 늦어지면 첫 닭 우는 시간도 하루 2분씩 늦어집니다.

4. 미각은 거의 퇴화

닭은 물을 먹은 뒤 하늘을 보죠? 이유가 뭘까요. 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개를 들지 않으면 애써 먹은 물을 줄줄 흘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각도 거의 퇴화돼 쓴맛만 겨우 감지할 수 있는 정도.

그래도 암탉의 경우 산란기가 되면 식성이 까다로워진다고 합니다. 보통 뱃속에서 달걀을 만드는 데 25시간이 걸리는데 노른자를 만들 땐 단백질 위주로, 껍질을 만드는 동안엔 조개.달걀 껍질 등 칼슘성분을 먹습니다.

5. 영양 덩어리 날개

닭날개를 먹으면 바람을 피운다는 속설, 사실일까요.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습니다. 다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소꼬리.참치 지느러미 등 운동량이 많은 곳에 영양소가 모이게 마련이므로 닭 역시 날개에 지방질이 모여 있어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콜라겐 성분도 많다고 합니다. 피부가 좋아져서 바람을 피운다고 하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6. 임신 중 닭고기 섭취와 닭살 피부

임신했을 때 닭고기를 먹으면 아기 피부가 닭살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근거가 없는 속설입니다. 근육과 신경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단백질이 풍부한 닭고기는 임신부에게 더 없이 좋은 음식. 다만 뇌졸중.고혈압 증세가 있거나 열 때문에 어지럼증이 있는 경우엔 피하는 게 좋다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