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좋은이들21 (2005.2)
"다섯 가지 지혜를 갖춘 덕금(德禽)의 닭"
   
 

소위 에스테틱은 메스테티카(Alexander Gottlied Baumgarten ; aesthetica Asthetik)다.
작품이 있고 미학이 있다.하나의 작품에서 반복과 차이를 볼수 있고 보편성과 특수성을 찾는다.

인간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12지(十二支) 동물 중 10번째가 닭이다.

새해가 되면 전통적으로 호랑이 그림과 닭 그림을 그려 집안에 붙인다.
정초에 그 해의 불행을 막고 복을 비는 벽사초복의 뜻으로 닭이나 호랑이 그림을 직접 그리거나 목판으로 찍어서 대문이나 병풍 등 집안 곳곳에 부쳐 쓰이면서 세화의 일종으로 전해져 내려 왔다.

동서고금을 통해 사람들은 밤이란 긴 어둠 속에서 닭 울음소리를 들으면 동이 트고 새벽이 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과 함께 몰려든 귀신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닭은 집에서 기르면서 식용으로도 쓰이지만 잡귀를 쫓는 영험한 동물로 상징되기도 했다.

=그리고 닭은 12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날개가 달린 짐승으로 땅과 하늘을 날아다녔던 즉,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닭은 원래 날아다니는 날짐승이었으나 인간이 길러 길들이게 되자 날지를 못했다고 보는 것이다.그래서 닭이 횟대(높은 곳)에 오르면 비가 온다고 알게 되기도 했다. 즉 습도가 높아지면 닭들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습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 닭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또 하나는 수탉의 볏과 암탉의 왕성한 다산의 상징성 때문이다.수탉은 '닭벼슬' 그 이름이나 생김새가 관(冠), 즉 벼슬과 통하므로 벼슬을 얻는다는 뜻이 있으며, 암탉은 매일 알을 낳기 때문에 다산(多産)으로 자손의 번창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서다.

이뿐만 아니라 닭을 좋아하는 또 다른 해석도 있다.즉 5가지 덕(德)을 갖추었다고 보는 견해다.

닭은 머리에 벼슬, 관(冠)을 썼으니 문(文)에 해당하고,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으니 무(武)애 해당하며, 적을 만나면 물러서지 않고 죽도록 싸우니 용(勇)이 모자람이 없으며, 먹을 것을 찾으면 주위에 소리쳐 알리니 인정이 있는 인(仁)에 해당하고 믿음을 잃지않게 시간을 지켜 새벽을 알리니 신(信)에 해당하는 오덕(五德)을 갖춘 덕성스러운 짐승 즉, 덕금(德禽)이라고 보기 때문이다.이것은 옜날 중국에 다섯 임금을 모셨던 원로 명재상이 훌륭한 방법으로 다섯 아들을 가르쳐 모두 벼슬에 오르고 높이 승진했다는 유래가 있으면서 오자등과(五子登科) 또는 오자고승(五子高陞) 둥으로 유명한 명문이 되었다.
이같은 뜻을 그림으로 구성할 때는 한 마리의 수탉이 다섯 마리의 병아리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때 수탉이 병아리와 둥우리(새집소)에 올라 놀고있는 형태로 그리는 것은 둥우리는 과(둥우리)로도 쓸수 있으며, 또 과는 과(科 = 과정과)와 동음동성으로 둥우리에 올라갔다는 등과가 되고 이는곧 등과(登科)가 되어 '과거에 급제했대'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민초들 소망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닭 그림들 중에는 맨드라미를 함께 그리는 경우도 있다.이것은 맨드라미가 닭 머리의 볏(벼슬)과 흡사해 계관화(鷄冠花)라고 부르는데서 연유된다.
닭과 맨드라미를 합치면 '관강가관(冠上加冠)이 된다.
즉 '관 위에 관'이 있다는 뜻으로 되어 높은 벼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닭과 모란을 함께 그린 경우는 수탉이 하늘을 향해 크게 우는 모습으로 묘사해야 한다.이것은 부귀공명(富貴功名)을 표현하기 위해서다.수탉을 한자로 공계(公鷄)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공(公)자와 운다는 뜻의 명(鳴)은 '功名'과 읽는 음이 같아 '공을 세워 이름을 널리 알린다'는 뜻으로 쓰인다.여기에다가 부(富)의 상징인 모란꽃을 더하면 '부귀공명'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닭 그림을 풀이하다보면 그 어원이나 변형의 방법이 모두 중국 문화의 영역 내에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닭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반드시 중국의 영향권에 속해있다고 보는 견해는 옳지 않다.
닭은 동남아시아 지방이나 인도에서는 야생하는 들 닭을 잡아다 사육 개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역시 6, 7세기에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는데 중국의 <삼국지> <동이전>이나 <후한서>에는 우리 나라에서는 꼬리가 긴 장미계(長尾鷄)를 키운다고 적고 있으며,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에도 꼬리 긴닭이 등장해 있다

또 신라의 시조설화에도 닭은 이미 관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김알지(金閼智)의 탄생 얘기에 따르면 왕이 어느 날 밤 금성(金城) 서쪽 시림(始林) 숲속에서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신하를 시켜 알아보니 금빛 빛나는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서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궤에서 나온 아이가 바로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해동역사>라는 책에서는 '조선에서 닭을 부를때 "구구"라고 부른다'고 적고 있다.

또 고려 때의 기록에는 닭이 새벽에 우는 습관을 활용해서 시보용(時報用)으로 궁중에서 여러 마리 닭을 키웠다고 했으며, 또 수일씩 먼길을 여행할 때는 시간을 알기 위해 몸집이 작은 당닭을 갖고 갔다는 기록도 있다.

=한편 중국 명나라 이시지(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닭은 종류가 많아서 산지에 따라 크기와 형태, 색깔에 차이가 있는데 조선의 장미계는 꼬리가 3~4척에 이르며 여러 닭 중에서 가장 맛이 좋고 기름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동의 보감에는 붉은 수탉 , 흰 수탉, 검은 수탉, 오골계 등으로 닭을 나누고 각 각의 효험을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나라는 옛부터 닭이 사람과 친밀한 관계로 함께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닭과의 특별한 관계를 <동국세시기>에는 '정월 원일(正月元日) 벽 위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붗여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는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닭은 가축으로서뿐 아니라 수호초복의 영물스럼 동물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닭을 신성시하기까지 했는데 정월 들어 첫 유일(酉日)을 <닭의 날>이라고 해서 이 날은 부녀자의 바느질을 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닭이 새벽을 알려 귀신을 쫓는 역활을 다하지 않고 제때에 울지 않으면 사람들은 불길한 징조로 여기기도 했다.

이같이 닭의 영물스러운 모습을 표현하려는 그림(민화)에서는 닭은 자연스럽게 사실적인 본래의 자연스러운 모습보다는 사람들의 마음(뜻)이 담긴 과장된 형태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객관적 사실로 그리기 보다 '마음의 눈' 즉, 사의(寫意)로 벽사의 강한 뜻을 표현하다 보면 닭은 실제의 닭과는 거리가 멀게 영물스럽게 왜곡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화에서는 수탉인 경우 닭인지 봉인지 분간키 어렵게 그려지기 일수이며, 호랑이 역시 바보스럽게 그린 것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뜻(마음)이 담긴 것을 그리다 보면 동서고금을 통해 서로 일맥상통하는 모습으로 닮아지는 경우가 많다.그 한 예가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닭이다.이것이 우리 민화의 닭과 비슷해 놀랍다



피카소는 이 수탉의 그림을 1938년에 히틀러의 독일군이 자기 고향인 스페인의 게르니카를 폭격했을 때 울분을 못이겨 그렸다는 숨은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화의 수탉이 못된 귀신을 쫓는다는 뜻에서 그려졌다면 피카소는 자기 고향을 폐허로 만든 '히틀러라는 귀신'을 쫓는다는 뜻으로 그렸다고 보야아 할 것이다.
다같이 못된 것을 쫓는다는 뜻에서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하다 보면 그 모습이 같아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민화에서는 그 대상이 닭이든 호랑이든 또는 다양한 새나 꽃이든 어느 것 하나 사실적 묘사보다 그 대상이 갖는 '의미있는 그림' 즉 마음의 크기로 표현된다.뜻을 담아 소망하거나 축원하고 기원하며 염원한다.

모든 것이 그림(민화)이 담고 있는 뜻대로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이다.우리의 민화가 얼핏보면 중국의 문자에서 오는 뜻과 상징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어서 중국문화의 아류처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자세히 관찰하면 독특한 우리만의 정서가 깃들어 잇음을 알 수 있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이 땅에 들어오면서 우리 전래 토속신앙인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을 포용해 바전시킨 것처럼 우리 전통 민화에 중국의 선진적인 이론이 합류되면서 우리의 민화가 좀더 세련 되게 발
전되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서공임은 그 동안 민화 중에서 용이나 호랑이처럼 단일 주제로 전통민화를 발굴하고 거기에 자기 나름의 해석을 통해 현대감각에 맞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염원에 부응하는 주제와 테크닉을 구사해 오
고 있다.

이번 닭그림도 닭해(乙酉年)을 맞아 닭만을 단일 테마로 선택했다는 것은 그 동안 작업의 일환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전통 민화라는 것이 그 유구한 전통과 인습 때문에 변화를 거부하고 또 조금만 잘못 변형시키면 그 의미가 탈색되기 때문에 오히려 민화를 파괴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일쑤다.

=민화를 민화답게 잘 유지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되고 또 오늘을 사는 서민들의 정서와 소망을 담아내는 서공임의 닭 주제 민화전은 우리를 찌든 전통의 민화적 인습에서 해방시키
고 '닭해'를 맞는 현대인들의 밝은 새해를 '먼동이 트는 닭울음' 만큼이나 희망차게 해주리라 믿는다.

김호년 미술평론가(고미술저널 발행인)